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KOIMA 리더스 포럼

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지역 한인민족운동 (박환 - 수원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)

사진으로 보는 러시아지역 한인민족운동

 

박환

수원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

 

아시다시피 러시아는 상당히 추운 지역이다</span>. 물론 따뜻한 날도 있을 것이다</span>. 그런 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인들이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했는데</span>, 러시아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은 학계에도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.

 

한인독립운동 가장 활발했던 나라

19911월</span>, 나는 처음으로 러시아 하바롭스크를 방문했다. 그 전까지는 러시아 지역의 한인독립운동은 그 중요성에 비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</span>. 나는 향토박물관에서 항일투쟁 당시 사진들을 처음 목도했다. 조선정부에서 대우도 못 받았고 양반의 자제들도 아닌 그들이 이처럼 조국을 위해 투쟁했음에도 우리나라 역사책 어디에도 이들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지 않다. 그래서 1991년부터 이름 없는 역사가들</span>, 독립 운동가들을 역사 속에 새롭게 부활시켜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러시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. 조선에서조차 대우를 못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이 뭐라고 영하 40~50도나 되는 추운 나라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했는지, 그런 부분들이 나에겐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.

한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한 것은 1860년대인데,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었다. 당시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에 굉장히 큰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. 하지만 조선 관리들은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다</span>. 그로 인해 그들은 만주며 러시아 땅으로 이주한 것이다</span>. 이주라기보다는 도망에 가깝다. 먹고 살아야 하니까</span>. 압록강과 두만강 상류 일대로 넘어간 사람들은 주로 만주로 갔고, 두만강 하류 쪽 사람들은 러시아로 넘어갔다. 압록강은 신의주에서 단둥을 지나고 하류 강폭이 워낙 크다. 두만강 강폭은 넓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비교적 쉽게 넘을 수 있었다</span>. 조국에선 먹고 살 길이 없어 러시아에 와 농사짓고 러시아인들의 하인 역할을 하며 끊임없이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갔다. 그렇게 연해주지역에 살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다</span>.

 

이주 한인에게 도움 준 러시아인들</span>

현재도 러시아지역에 많은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지만</span>, 사실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지역에 이주했던 한인들을 많이 도와줬다. 어르신에겐 예우를 갖췄다</span>. 러시아에 살고 있던 평민들</span>(한인들</span>)에게 러시아 지배계층이 독립운동을 지원해주고 이주 초창기 한인들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배려를 많이 해준 것이 사실이다. 그러므로 한러 간 친선을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. 우리들이 학교 다닐 때 방공교육을 너무 철저히 받다 보니 러시아에 대한 친근함보다는 두려움이나 공포가 먼저 느껴지는 것 같다.

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기도 하다. 한인들은 러시아 주요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</span>, 하바롭스크</span>, 카바르디노발카리야</span>, 모스크바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. 시베리아 횡단철도 노선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</span>, 카바르디노발카리야</span>, 페테르부르그, 예카테린부르크, 모스크바까지 9,288km로 이어져 있다. 거의 러시아 전역에서 끊임없이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말할 수 있다. 풀코스인 만큼 웬만한 사람들은 잘 타지 않는다</span>. 우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18박</span>19일에 걸쳐 탔다. 이는 중간에 내렸다 탔다, 쉬었다 구경하다 이런 식으로 했을 때의 결과다</span>. 각 기차역에 내리게 되면 우리나라 무역과 관련된 수많은 상품이 모스크바 전역뿐만 아니라 시베리아, 러시아 전역을 장악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</span>.

 

연해주지역에서의 항일독립운동

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연해주지역에서 수많은 투쟁들을 했는데</span>, 대표적인 인물이 최재형과 그의 심복인 안중근이다</span>. 블라디보스토크 한인 타운에서는 안중근 등 한인들의 항일 계획들이 수립됐다. 1908년 구국․</span>계몽운동을 위한 해조신문, 대동공보를 창간해 민족의식을 계몽시키고자 노력했다. 블라디보스토크를 부동항(不凍港</span>)이라고 하지만 얼기도 하는 데다 세빙(細氷)이 활동을 많이 하고 해서 요새는 북극해 쪽 무르만스크 쪽이 대표적인 항로로 개발되고 있는 것 같다. 무르만스크 지역은 우리 한인들이 유배를 많이 당한 곳이기도 하다.

나는 한국에서 만주로 박사를 받았는데 만주 연구를 하다 보니 계속 러시아 지명들이 등장하고, 만주분들이 많이 오고 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</span>. 우린 삼팔선이 있다 보니 국경 간 소통이 안 되고 갇혀 있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. 그런데 중국, 러시아는 그렇지가 않다. 북한과 중국도 마찬가지고</span>. 만주를 잘 알려면 러시아도 잘 알아야겠구나 생각해서 러시아를 삼사십 회 정도 갔는데 그때마다 러시아에 있는 고려인들이 하는 이야기가 최제헨</span>(최재형</span>)이었다</span>. 나는 학교나 책에서 배운 바가 없어 최재형이 어떤 사람인지 그쪽에서 알마타, 비스크 등에서 후손들을 인터뷰 하고 자료를 찾다 보니 러시아지역 항일운동의 실질적 대부일 뿐만 아니라 한국 독립운동의 대부였다</span>. 이런 사람을 우린 전혀 모르지 않나.

 

독립 운동가이자 기업인</span>, 자본가 최재형</span>

최재형은 실질적으로 항일투쟁의 대부일 뿐 아니라 상업, 무역을 많이 한 기업인이었다. 최재형은 노비 출신이라고 한다. 후에 무역 덕분에 당시 러시아지역에서 독립운동 한 한국인 가운데 가장 부자였다</span>. 블라디보스토크의 우리 한국인들은 그 당시 장사를 참 많이 했다. 일반적으로 상업하면 육지로 다니는 것을 생각하지 않나. 그런데 러시아 이주 동포들은 철도를 이용한 대륙 상업 외에도 바다와 배를 많이 이용한 것 같다. 그래서 당시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곳에서 우리나라 원산이나 청진 또는 부산</span>, 일본 나가사키 쪽으로도 무역업과 상업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. 솔직히 말하면 기업인들이 독립운동 양다리 걸치기를 많이 하는데 진짜독립운동을 하고 돈</span>(활동 자금)도 많이 내는 그런 사람은 잘 없지 않았나</span>. 그런데 이 사람은 그랬더라. 러시아 국적을 갖고 있음에도 항일투쟁을 지원하다 결국 투쟁 중 일본군에게 피살당한 비운의 인물이다.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도 최재형의 후원과 지도에 의해 이루어졌고</span>, 안중근 의사 의거는 러시아지역 항일운동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.

 

투쟁정신과 넋 기리는 것 중요

러시아지역 항일독립운동을 가장 활발히 했고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 손꼽히는 사람은 의외로 여성이다. 바로 김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</span>(스탄케비치)다</span>. 러시아 혁명군 외무부 장관을 지냈고 1918년 겨울 하바롭스크 아무르 강가에서 일본군에게 총살당했다</span>. 보통 러시아사람들이 아무르 강에서 겨울 낚시를 많이 하는데 한두 달 동안 낚시를 안 했단다</span>. 물고기가 시신을 뜯어먹었을 거라고</span>. 김알렉산드라는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독립유공자로 표창한 만큼 러시아지역의 상징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다</span>. 우리가 유관순 할머니를 기억하듯 러시아지역 많은 동포들은 김알렉산드라를 기억한다. 이처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러시아지역에서 항일투쟁을 준비했으나 우리 역사 속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그분들의 넋과 투쟁정신을 꼭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.

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기업가들이 있다. 그런 사람 모두 제</span>2의 최재형이고</span>, 제</span>2의 독립군이다</span>. 역사가로서 말하자면 최재형이란 인물은 그런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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